
잠들지 못한 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손
이번 주 초, 다른 주에 사는 사촌이랑 사촌 약혼자를 만나러 거의 8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운전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 주엔 가본 적은 있었지만, 그들이 사는 도시는 처음이라 익숙한 곳이 하나도 없었음. 공교롭게도 운전하는 시간의 거의 절반 동안 실제 범죄 팟캐스트랑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런 무서운 사연 들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이번 일을 더 불안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함.
사촌 집 도착해서 두 분이 저한테 손님용 침실을 보여주셨는데 그 방은 사촌 약혼자가 쓰는 홈짐이기도 했어요. 1층에 있는 방이라는 점 자체는 큰 문제도 아니었는데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게 창문이었어요. 블라인드도 일부가 망가져서 너덜너덜하고 누군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엔 충분한 틈이 남아 있고 낮에도 그 창문이 이상하게 불편했음
뒷마당도 꽤 탁 트여서, 맘만 먹으면 누구든 집까지 바로 걸어올 수 있는 구조였는데... 난 흑인 여자인데, 자라면서 가족에게 주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늘 들었었음. 동네가 얼마나 안전하다고 해도 문과 창문은 전부 잠겨야 한다는 게 우리 가족의 생각이었음. 괜히 통계의 일부가 되고 싶진 않았겠지
근데 사촌이 이 동네가 진짜 안전하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주변 범죄 얘기하다가 근처에서 가장 심한 사건은 주유소에서 누가 사탕 하나 훔친 거라는 농담까지 했었음. 그래서 난 그동안 무서운 범죄 얘기 너무 많이 들어서 괜히 예민해진 거라고 생각하고 경계 좀 풀어버림
첫날 밤엔 별일 없었지만, 그냥 잠드는데 꽤 오래 걸렸음. 난 시력이 아주 안 좋아서 안경 쓰는데, 민망하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어두운 방에 있는 건 아직도 좀 불편함. 새 도시, 1층 침실, 망가진 블라인드가 달린 창문까지 겹치니 불안할 만한 조건이 한꺼번에 갖춰진 셈이었지
난 계속 창문 쪽 흘끗거리면서 ‘누가 밖을 지나가면 어떡하지?’,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만 했었는데.. 그래도 결국 잠들고 아무 일도 없었고.. 둘째 밤도 마찬가지고 두 밤 다 집안이 꽤 더워서 창문 좀 열어뒀는데 저녁 시원시원 바람 진짜 좋았음
근데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밤에 뭔가 느낌이 달라진 거 같아요. 그날 낮에 사촌 약혼자랑 같이 실제 범죄 이야기를 보고 이야기했는데 온종일 이런 이야기 듣다 보니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를 겁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저날 집 나가기 전엔 창문을 닫고 잠갔어서.. 만약 누군가 창문으로 기어들어 오려 하면 어수선한 홈짐 안 물건 다 넘어뜨리겠구만. 그럼 내가 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역시 내가 지나치게 경계하면서 떠올린 쓸데없는 생각이었지
저날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도 에어컨 켜두었는데 집안은 여전히 더웠음. 그래서 난 다시 창문을 열었고 잠자리에 들고 불 끄고 잠들려 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옴. 거의 세 시간을 뒤척였네ㅋㅋㅋ
계속 창문 닫아야지 했는데 방이 너무 더워서 그냥 열어두기로 했어요. 한때는 너무 불안해서 휴대폰 손전등 켜둔 채 자는 것도 생각했었는데 블라인드가 망가져서 불을 켜도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이 방 안을 훨씬 쉽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잠들기 포기하고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는데 잠시 틱톡을 보다가 아마존으로 옮겨서 할로윈 의상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스크롤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 때 창문 바로 바깥의 덤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처음엔 크게 신경 안 씀. 바람이 불었나, 다람쥐가 움직인 거 아니냐 싶었는데 같은 소리가 또 들려서, 이번엔 훨씬 컸음
난 창문 등지고 누워 있었는데 무언가 하던 걸 멈추고 제대로 들어보라는 거 같았음. 휴대폰 화면 빛 없애려고 휴대폰 뒤집어놓고 조용히 누워 있었음.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계속 나더니 이제는 뭔가 창문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곧바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난 천천히 몸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봤다. 밖은 어두운데도 덤불 사이의 그림자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빛은 있었으니까
저때 보였지. 침실 창문 바로 바깥에 서 있는 사람 실루엣이
저 순간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말로 설명이 안 가긴 함..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거 같은 느낌.. 난 계속 내 눈이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음. 덤불 때문에 생긴 그림자 잘못 보고 있는 거일 수도 있고 무서운 얘기 너무 많이 들어서 이렇게 느끼는 거일 수도 있다고 말이죠
난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소리랑 움직임 들으려 했는데 곧 속이 철렁 내려앉음
블라인드가 움직이고 있었네
덤불 아니었음. 창문에 달린 실제 블라인드가 움직이고 있었음
난 침대 옆 무게추 위에 놓여 있던 안경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가능하면 조용히 움직여서 저 사람이 실제로 뭘 하는지 확인하고 얼굴도 보고 싶었음. 그런데 역시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실수로 하이드로 플라스크를 건드리고 말았음. 물병은 무게추에 부딪혀 엄청나게 큰 금속음이 나더군요
그 순간 난 창밖의 사람이 내 소리 들었을 거라 확신하고 급히 안경 쓰고 창문을 바라봤는데, 거기에 있었음.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와 있는 사람 손이 보였네
난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생각할 틈도 없었어.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을 세게 닫았지. 근데 손이 창문에 끼일 수도 있겠다 싶었음.. 너무 세게 닫은 탓에 손톱 하나가 완전히 부러짐
창문 닫히자마자 누가 덤불 헤치면서 달아나는 소리 들림. 난 위층으로 달려가 사촌 침실 문 두드리면서 방금 무슨 일인지 다급하게 설명했고 두 사람 너무 깊이 잠들어서 문 열기까지 거의 5분이나 걸림
난 완전 겁에 질려서 저 침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거실에서 밤을 보냈었음. 오전 3시쯤까지 잠깐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해가 뜨기만 기다리고
짐 챙겨 바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밤중에 겁에 질리고 지친 상태로 몇 시간씩 운전하는 건 현명한 짓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날 아침 짐 싸면서도 난 다시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었음. ‘정말 내가 괜히 예민했던 거였다면? 무서운 팟캐스트를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릿속으로 없는 일을 만들어낸 거였다면?’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었음
그래서 낮에 창문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어요.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방 안 들여다봤으면 뭘 볼 수 있었을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창문에 쌓인 먼지 위로 긁힌 자국이 나 있었고, 손자국도 남아 있는 걸 발견했어요.
진짜 속이 메스꺼웠음
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 했던 건지, 아니면 잠자는 나를 지켜보려 했던 소름 끼치는 사람인지 나는 아직도 전혀 모른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그곳에 서 있었는지도, 이전 이틀 밤에 내가 그 방에서 자고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도, 무슨 의도였는지도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영원히 알고 싶지 않다.
더 무서운 건 사흘 동안 그 정확한 창문에 대해 이상한 느낌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난 계속 내가 과민한 거야, 실제 범죄 얘기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우리 동네 안전해~ 하니까 아무 일도 안 생길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달랬는데 진짜 잠들 수 없었던 그날 밤, 실제로 무언가가 일어난 거야
난 진짜 깊이 잠드는 편이라 한번 잠들면 주변에서 무슨 일 있어도 잘 모름 ㅋㅋㅋ 그날 잠들었으면 진짜 아무 소리도 못 들었을 거 같은데 내가 그 집에 아예 없었으면 사촌이랑 사촌 약혼자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네
둘이 위층에서 너무 깊이 자고 있어서 내가 몇 분 동안 다급하게 문 두드리는데도 못 들었을 거고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와 아래층을 돌아다닐 때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생각하면 진짜 끔찍하네
내가 뭐 오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날 밤엔 우주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진짜 들더라. 잠이 안 오고 계속 불안하고 휴대폰 내려놓고 밖에서 나는 소리 제대로 듣기로 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직감이었는지 지나치게 예민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깨어 있었던 게 진짜 다행이라 생각함
또 하나 계속 힘든 건, 내가 침해당했다는 압도적인 느낌임. 실제로 누군가가 나를 만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정말 나를 봤는지도 모르니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긴 함. 근데 침실은 완전히 경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 맞아. 저래서 잠자고, 옷 갈아입고, 제일 취약한 상태로 지내는 거임
저런데 내가 누워 있던 자리 몇 센티미터 밖에 낯선 사람이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 들어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임. 나는 아직도 그걸 계속 머릿속으로 되짚어. 특히 그 손을 본 순간을 떠올리며, 내가 깨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게 됨
말할 것도 없지만, 혼자 겪은 일 중 제일 무서운 경험에 속하긴 하네요. 그리고 앞으로는 1층 창문 열어둔 채 편하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네요.
저날 밤 내 침실 창문 밖에 서 있던 놈한테 말하고 싶다. 우리 다시는, 진짜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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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밀
댓글
진짜 끔찍한 일이네... 전혀 오바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면 믿어야지. 아무 일 없이 모두 무사하고 더 큰일 벌어지기 전에 알아차려서 진짜 다행이네. 사촌분도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길
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사연이네요. 깨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린 게 정말 다행이네요. 창문 닫을 때 손을 끼이게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사촌이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집 보안을 강화하시거나 최소한 경찰에 신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들어오려 했고, 다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저도 몇 년 전 새벽 4시에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오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도 잠이 안 오고 깨어 있었고, 컴퓨터로 영상 보고 있었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그 사람 쫓아낼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어요. 내가 자고 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네요.
계속 같은 이야기를 아주 길게 했는데, 정작 사촌과 그 약혼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 부분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반응했고, 뭐라고 말했는가?
1층 창문 열어둔 걸로 절대 편하게 지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무사해서 다행이네. 다음엔 그냥 선풍기 사든가
진짜 섬뜩하네. 앞으론 창문 가리개에 문제 있을 때 쓸 여분 침대 시트 하나 마련해서 커튼 대신 걸어두는 것도 좋겠네. 나도 신경다양성 있고 누군가가 낮이든 밤이든 내가 깨어 있든 자고 있든 창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 진짜 싫어서 아래층 창문 늘 가려두고 아래층 욕실 창문엔 아무도 안을 볼 수 없게 반투명 장식필름도 붙여두고... 특정 제품 추천하는 뜻은 아니고 구글에서 가져온 이미지일 뿐, 내 건 아마존에서 샀음.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돈도 충분하다면 모든 창문에 두꺼운 비산 방지 필름 붙이고 싶음. 종류에 따라 소구경 권총 탄환을 막을 수도 있는 제품도 있다고 함. 집 에어컨이 괜찮아서 창문도 절대 열어두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