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인치와 1.5클리퍼를 착각한 미용실 사고
나 미용사인데 엄밀히 말하면 이발사가 아니라 둘이 다른 직업이긴 한데 어쨌든 미용실에서 일하는 거라... 우리 미용실은 고객마다 지난번에 어떤 머리 했는지 짧은 메모 남겨놓음 그러면 기록 확인하고 ‘옆과 뒤는 4번, 위는 2인치’처럼 바로 작업할 수 있어서 편함. 손님이 좀 더 길거나 짧게 해달라 하면 그때 조정하면 됨
저 날은 아침 일찍이었는데 문 연 지 한두 시간 정도밖에 안 지나서 그런가... 손님 자리로 안내하고 기록 확인해 봤더니 진짜 간단한 거였네 옆이랑 뒤는 1번, 위는 1.5번이라고 적혀 있던데
이 정도면 거의 스포츠 머리인데 미용사들 이런 머리 좋아함 빠르고 간단하고 머리카락 한 번에 정리하는 느낌이라 꽤 만족 오랜만에 제대로 짧은 머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들떠 있었네
손님 자리 앉히고 목에 가운 두르고 인사함. 실제 이름은 쓰지 않겠으니 여기선 ‘스로크모턴’ 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태도가 별로였습니다. 턱을 이를 악물고 있는 거 같고 말투도 계속 씹쓰럽고 문장만 옮겨 적으면 별거 아닌 말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실제 어조가 엄청 퉁명스러웠음
내가 기록 확인하면서 물었음 “옆과 뒤는 1번, 위는 1.5번 맞으시죠?” 그러니까 “기록에 적힌대로 하세요” 라고 함. 그게 전부였는데 말투가 당장 대화 끝내고 싶다 이랬음
걔는 머리하는 내내 그런 식이었음.. 마치 내가 세상 제일 지루하고 귀찮은 사람인 것처럼 반응함. 그래도 나는 친절하게 응대해야 되는 입장이니 주말은 어땠냐, 날씨가 참 이상하지 않냐 이런 식으로 몇 가지 말 걸음 얘는 “음”, “흠” 정도로만 답했고, 대화하고 싶지 않단 게 분명한데 나도 더 억지로 말 걸지도 않았지
옆과 뒤부터 밀기 시작해서, 그 부분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고, 작업 시간이 길지도 않았는데... 이어서 클리퍼에 1.5번 가드 끼우고, 그걸 한 번 흘끗 봤음
여기서 말해 두자면 나 진짜 실수 많은 사람임 ㅋㅋㅋ 덤벙거리는 건 물론이고 멍청한 실수도 참 많이 함 내가 지금부터 위쪽 머리를 거의 피부 가까이까지 밀 거라는 걸 훨씬 분명하게 설명했어야 했는데 안 했음
난 다시 “위는 1.5번 맞으시죠?” 라고 물었더니 지쳐가는 사람처럼 “아무거나요. 네” 라고 답함 그래서 난 “알겠습니다 아주 짧게 할게요” 라고 말하고, 그대로 얘 머리 위에 클리퍼를 대고 한 줄 밀었음
얘는 아무 반응도 안했음 아마 휴대폰 보고 있어서 내가 진짜 머리 꼭대기에 클리퍼 대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 같음 근데 한두 번 더 밀고 나니까 걔가 거울 속 내 모습 보며 물었음
“1.5인치 맞죠?”
심장 멎는 줄 알았네 내가 쟤를 보며 말했지 “기록엔 1.5번 가드라고 적혀있는데 클리퍼 기준으로요.”
설명하자면 클리퍼 1번이 8분의 1인치, 2번이 4분의 1인치 숫자가 올라갈수록 조금씩 길어지는 거임 그러니 클리퍼 1.5번이 1.5인치랑 비교하면 훨씬 짧음 거의 피부 가까이까지 밀리는 길이긴 함
그의 머리에서 이미 3분의 1 정도가 밀린 상태였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내 실수를 설명하고 싶기도 했고, 남은 머리로 수습할 방법을 찾고 싶기도 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최악인 게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상황이 좀 우스꽝스럽다 싶었다는 거
스로크모턴 마치 내가 고딩 그만두겠다고 말한 걸 들은 아버지마냥, 극도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고는 “그냥 끝내세요” 라고 말했네 ㅋㅋ 근데 그 말만으로는 나머지도 전부 밀라는 건가? 남은 머리를 어떻게든 살리라니?
그래서 난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더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 결국 “그래요 그냥 밀어버려요 빌어먹을” 이라고 하고 나도 그냥 머리 전체를 밀었음 난 당연히 비용은 안 받겠다고 말했지만 그땐 그런 말도 전혀 도움이 안 됨
근데 작업 끝내니까 순식간에 저 단정한 사무직 직원 같은 얼굴이 범죄자 사진 속 인상으로 바뀌어 있던데... 난 머리가 다시 자라는 데 두 달 정도면 될 거라고 얘기했는데 좀 낙관적인 예상이긴 했지만 그땐 어떻게든 달래고 싶었음 쟤는 벽에 주먹이라도 내리칠 사람 같은데
주변 정리하니까 바로 나가버림 한마디도 안하고 난 이후 기록을 몇 번이나 다시 봄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네 진짜 머리 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구만... 다만 그 기록을 마지막에 입력한 사람이 잘못 적은 거고 그 결과가 내 문제가 돼버린 거임
그래도 내 잘못이기도 했다. 그의 머리는 길게 자란 스포츠 머리가 아니라 페이드 스타일이었다. 내가 조금만 제대로 봤다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근데 난 짧은 머리 할 생각에 들떠있었고, 얘랑 더 오래 대화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시작해버림
결국 서두르고 작업하고, 확인해야 할 대화를 건너뛰고, 그 결과 내 인생 최악의 스포츠 머리 작업이 됨. 진짜 팁 마이너스 받은 기분이었음. 걔 원망 때문에 내 지갑에서 1달러 증발한 것처럼.
요약 : 손님 헤어스타일 기록 대충 보고 머리 전부 밀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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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밀
댓글
사실 잘못은 님보다 그 손님한테 더 있어 보이네요. 지가 무뚝뚝한 걸 깨달았고, 결과가 맘에 들진 않았지만 결국 자기 책임이라는 걸 받아들인 거 같음. 화난 대상도 님보다는 자기 자신이었던 듯
근데 진짜 다 안타깝네.. 참고로 정확한 표현은 ‘좋은 예’가 아닌가?
그 손님 이전에 작업한 사람한테도 화를 냈을 거 같네요. 님은 본의 아니게 자기가 자초한 결과에 참여한 셈이네요. 이런 상황으로 스트레스 받은 건 안타까운데, 기본적인 예의라도 배워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짧은 머리가 된 것까지 아쉬운 건 아닌 듯요. 같은 교훈을 여러 번 겪어야 제대로 배울 수도 있겠지.
걔는 님한테 무시하듯 말한 게 잘못이긴 한데, 상황 전체에 화가 났던 거 같은데요. 님 몰아붙이지도 않았고, 실망한 채 자기 자신한테 화내면서 떠난 거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런데도 님이 아직까지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음.
님 전적으로 잘못한 일 아닙니다. 원하는 스타일을 확인하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분은 기록대로 하라며 사실상 말을 끊으셨네요. 그래도 기록이 잘못될 수 있으니 확인 대화를 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더 아쉬운 점은 비용을 안 받아서 그분이 이 일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