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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의 졸작 CD를 전화 보류음으로 틀었다

얼마 전 예전 직장동료랑 얘기하다가 같이 웃었던 일인데... 내가 다니던 회사는 다른 주에 본사가 있고 내가 있던 사무실은 두 명만 일하는데 전화는 한 사람이 받았고, 다른 사람 앞으로 온 전화면 보류 걸고 사무실 건너편에 대고 “전화” 외치는 그런 방식이었음 상대가 통화 중인 게 보이면 그냥 메모를 남겨두기도 했는데, 이 방식 꽤 잘 돌아감

근데 본사에서 이거 안 맘에 들었나 본데 본사에서 쓰던 고급 전화 시스템 같은 거 사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새 시스템 설치하고 고객들 전화 메뉴랑 지옥 같은 음성사서함을 직접 운영하게 됨

여기서 좀 배경 설명해야겠네. 우리 회사 소유주가 유럽 회사 출신이었는데, 동유럽 어딘가에 가족이 운영하는 빵집이 있었음. 회사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곳의 전통 쿠키를 막판에 대량으로 주문했음. 매년 허가 누락? 수입 지연? 농산물 관련 제품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 어쨌든 쿠키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도착

그러면 우리 둘 중 한 명이 차 몰고 네 시간 가서 우리 몫 쿠키 가져와야지. 우리는 그거 직접 먹어서는 안 됐지만 내 고객 중에 선물 못 받는 정부 기관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상자 사무실에 남겨두고 한 번 먹어봤었음

지금까지 먹어본 쿠키 중 최악이었음. 사막 전체를 입안에 넣은 것처럼 침을 모조리 빨아들이는데, 오래된 판지보다도 맛이 없었음. 이런 걸 사람들 먹으라고 선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음. 아마 회사에서 그 쿠키 실제로 먹어본 사람 우리 둘뿐이었을 듯

근데 어느 해엔 쿠키가 제때 세관을 못 통과함 ㅋㅋㅋ 소유주의 사위는 음악가 지망생이었는데 알고 보니 소유주는 그해 초에 그 아이를 도와주려고 녹음 비용을 대준 적이 있었음 ㅋㅋㅋ 그 CD의 음악 스타일과 완성도는 커피숍 오픈 마이크에서 들을 법한 수준이었음. 소유주가 쿠키 대신 그 CD를 수백 장 만들어 고객들한테 나눠줄 예정이던데

새 전화 시스템 설치한 뒤, 우리 중 한 명이 설정을 살펴보다가 보류음으로 CD 재생할 수 있는 CD 플레이어가 있다는 걸 발견했음. 저는 1980년대 메탈 듣는 사람이라 Slayer 정도면 내 취향 중에서도 쉬운 음악에 속했지만, 동료는 뭐랄까... 아무튼 꽤 이상한 음악을 들었음. 그러니 우리 개인 소장 음악 중에는 쓸 만한 게 없었음

근데 사무용품 보관함에 뭔 게 남아 있겠냐 ㅋㅋㅋ 맞음. 저 CD가 몇 장 남아 있었음. 난 그중 한 장을 CD 플레이어에 넣었는데, 우리 사무실 보류음이 생겼네. 전화 시스템에 보류음도 없이 설치가 끝났다고 할 수는 없지?

얼마 뒤 한 부사장이 전화 와서 보류음 때문에 꼬였었는데 우리가 고른 음악에 상당히 화를 냈음. 근데 회사가 그거 고객들 나눠줄 만큼 좋아했던 거 아닌가? 본사에서 설치하라고 한 전화 시스템 기능 아닌가? 내가 가진 음악을 진짜 안 듣고 싶은 건가? 동료가 가진 음악은 더더욱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후속 조치는 빠르고 즉각적이긴 했네. 우리는 전화 시스템 모든 기능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고, 보류음도 틀지 않아도 되게 됨. 다만 나머지 전화 시스템 기능은 계속 쓰게 됨.

요약 : 직장에서 새 전화 시스템 강제로 쓰게 되고 소유주 사위가 만든 형편없는 CD를 보류음으로 틀었더니 이제부터 보류음 쓰지 말라며 지시받음

댓글

재밌는 얘기야. 나도 영화, TV 업계 일할 때 비슷한 일 겪었는데 한 번은 유명한 광대들이 시설에 오게 돼서, 동료랑 내가 화장실에 스피커랑 음악 설치하라는 지시를 받음. 기계실 CD 플레이어에 연결해 두고 작업을 끝냈는데, 근데 좀 성가신 진행자 한 명이 음악이 너무 지루하다며 CD 플레이어 찾아내서 정말 음향효과 자료실에 있던 방귀 소리 CD로 바꿔버림. 물론 다 디지털화되기 전의 일이라... 며칠 뒤 접수 담당자가 이상한 질문 꽤 많이 받았다고 함. 그 CD 플레이어가 전화 시스템의 보류음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 그 진행자가 모든 발신자에게 방귀 소리 들려주고 있었던 셈. 그가 문책받았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우리는 CD 바꾸고 플레이어에 안내문 붙이라는 요청을 받음.

“지금까지 먹어본 쿠키 중 최악이었음”이라는 부분을 보니까 비슷한데 주인공이 아닌 얘기가 생각나서...ㅋㅋㅋ

저 쿠키는 회사 간 자금 이동이나 세금 공제 이런 수상한 방법으로 쓰인 줄 알았네요

회사에서 Slayer를 보류음으로 썼으면, 그 회사에 대한 내 평가가 올라갔겠네

저 사위 이름 혹시 Hunter였나? ㅋㅋㅋ ‘That one night…’ 이 노래 떠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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