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상에 없으면 일한 게 아니다”라는 CTO의 말
중견 B2B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하이브리드 근무를 해왔음. 암묵적인 약속은 간단했음. 일주일에 며칠은 사무실 나오고 밤 9시에 운영환경 터지거나 토요일에 고객이 다급하게 연락하면 누가 봐도 집에서 처리했지 ㅋㅋㅋ 돈 받지도 않았는데 아무도 안 까더니 일종의 호의와 신뢰로 굴러가던 방식이었음
근데 훨씬 더 경직된 회사에서 온 새 CTO가 부임했고, 두 번째 전사 회의 때 유연한 근무제를 없애 버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예외 없이 사무실에 있어야 함. 근무시간 이후 긴급상황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나올 때는 거의 그대로 옮기면 이런 취지로 말했음
“책상에 앉아서 실제로 일하고 있지 않다면, 저는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 9시에 소파에서 여러분이 뭘 했을지는 관심 없습니다.”
누군가 반쯤 농담으로 물었음. “그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책상에서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근무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CTO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지. “정확하네요. 서로 같은 이해를 하게 돼서 다행이군요.”
와 진짜 우리는 같은 이해를 했네. 그리고 그 말을 완전, 글자 그대로 따라함. 오후 5시 되면 슬랙 알림 정확히 꺼 버리고, 퇴근한 뒤 아무도 이메일 안 봄. 오후 6시에 한 PM이 장애가 난 연동 기능 때문에 당직자한테 연락했지만,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아무런 답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금요일 오후 4시 52분에 배포가 되었는데 배포 중지 시간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시점이었음. 설정값 하나가 특정 고객 세그먼트에 안 걸리고, 경고 알림은 오후 5시 6분에 나옴. 예전 방식이었으면 누가 휴대폰으로 확인해 오후 5시 30분쯤에는 빡세게 뒤졌을 텐데
근데 새 규정 아래에서 아무도 책상에 없었음. CTO 본인 말에 따르면 그때는 아무도 일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확인 안 했음
문제는 주말 내내 계속됨. 우리 회사 가장 큰 고객은 61시간 동안 대시보드를 완전히 못 쓰는 상태로 지내서, 월요일 오전 9시가 되니까 고객지원 티켓 200건 넘게 쌓이고 영업 담당 부사장이 빡쳐서 올라와 있음. 고객분은 '이탈'이라는 말을 계속 꺼냄
CTO가 어떻게 이틀 반을 아무도 못 알아차렸냐고 따져 물었더니 팀 리더가 아주 무덤덤한 표정으로 전사 회의에서 CTO가 했던 말 그대로 띄워 주네
“책상에 앉아서 실제로 일하고 있지 않으면, 저는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말 내내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CTO 정의에선 아무도 일 안 한 셈이니까 그러니 알아차릴 일도 없었겠지
회의실 진짜 그렇게 조용해지는 거 처음 봤음
일주일 안에 제대로 된 당직 근무표 생겨서 막연한 호의나 분위기가 아니고, 실제 대체 휴무도 포함된 방식이었음. 한 달 뒤엔 하이브리드도 ‘시범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돌아옴. 그 후로 누구도 “책상에 없으면 일한 게 아님” 이딴 말 입 밖에 못 꺼내게 됨
알고 보니 ‘진짜 일이 아니구나’라는 많은 일들이, 아무런 보상 없이 회사를 떠받치고 있더군요
이 썰 평가하기
썰밀
댓글
결국 저 CTO가 근무환경 개선하려고 몰래 도와준 셈이라는 말인가 봐요?
근데 왜 금요일 오후 4시 52분에 배포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